[#1. 파시즘의 조건과 정의] 파시즘을 정의내리기 힘들지만, 이를 구성하는 것은 대략 3가지 정도로 추려볼 수 있다. 삶의 물적 기반이 급속도로 붕괴는 현상이 정치경제체제 자체의 균열과 함께 이뤄지고, 그 가운데 축적되는 분노가 특정한 '희생양' 혹은 '가상의 적'을 상정한 채 집약적으로 표출되는 것. 파시즘은 단순한 집단적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기반의 붕괴와 더불어 외적인 체제의 균열이 동시에 목격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또한 파시즘은 그 분노의 정치적 '표출'을 현상으로 해야 한다.
사실상 파시즘은 자본주의적 체제 자체가 큰 격변을 겪게되는 시기, 곧 대공황이나 폴라니 식으로 말하자면 자기조정시장이 위기의 극한에 마주한 때에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적인 욕구의 추구와 물적인 토대의 파탄은 인간에게 극단적 선택을 가능케 할 긴장상황을 마련해주고, 또한 위기의 국면에서 개개인의 대중은 막연한 '새로운 극복'을 갈망하고, 또한 개개인은 집합적으로 체제 자체의 균열을 이겨낼 것을 종용하고 또한 종용받는다.
[#2. 공/사의 결합] 위기의 상황에서 여기저기에서 표출되는 분노는 조직되지 않은 채는 파시즘으로 발전할 수 없다. 파시즘은 발생적으로 이미 근대국가와 근대 사회를 전제하고 있다. 거대하게 집약된 정치적 축적체로서의 국가는 이미 조직화되지 않은 개인의 분노만으로는 '개선'될 수도 혹은 '파괴'될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조직된 분노가 지극히 공적이며-또한 사적인 이중적 대상을 '희생양'으로 지목할 때 비로소 파시즘은 시작될 수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공적심성에서 적대하는 그 무언가보다, 사적심성에 의해 적대될 수 있는 그 무언가에 더 폭발적이고 자발적인 폭력의 표출을 기꺼이 수행하게될 것이다. 물론 공과 사의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파시즘의 발현에서 우리는 공과 사의 충돌없는 융합을 목격할 수 있다.
[#3. 파시즘과 그 반동(reaction)] 되려 파시즘의 요소에서 '독재자'가 핵심적인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파시즘에서 상정되는 '가상의 적'과 그 적을 상정하여 반사적 이익을 얻는 독재자는 파시즘이라는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분노의 점차적 표출이 폭력으로 전환되기 까지 독재자는 '적'을 명확히 지정해줌으로서 반사이익을 얻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적'이 설정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1차대전 후의 파시즘과 그에 대항한다고 여겨졌던 연합국을 단지 파쇼대 민주의 구도로 규정지을 수만은 없다. 연합국 국내에서 또한 경제공황의 국면에서 집약되는 분노가 그들이 '파쇼'라 지칭하던 하나의 '적'을 상정하고 그에 대한 공공연한 폭력의 양태가 나타나는 순간, 그 또한 파시즘의 전초가 아니라 부인하기 힘든 대중적 심성을 구성하게 됐을 것이다. 다만 현상의 선후관계란 부인할 수 없는 차이점은 존재한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잘 모르겠다.. 아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정치경제체제 자체의 균열 상황에서 파시즘에 대항하는 또 다른 집단의 내부에도 파시즘적 심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주의의 탈을 쓴들, 민주주의의 탈을 쓴들, 혹은 자유주의의 탈을 쓰게 되든 '파시즘'에 대한 반동은 분명 또다른 구호의 '파시즘적 양태'이다. 2차대전 이후 연합국의 승리로 우리는 '반동'으로써 나타난 파시즘적 양태에 '선'이라는 작위를 부여했을 뿐이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다만 일련의 과정에서 '올바름'에 대한 역사적 추동력이 작동한다면, 그것은 필연히 파시즘대 파시즘의 대결이 종결지어진 뒤에야 가능해질 것이다.
[#4. 그리고 지금] 파시즘의 전초들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누누히 떠벌리고 다니듯, 2007년의 공황에 대한 '자유주의적 연합체'의 지연노력은 이미 한계에 직면했다. G20의 논의와 함께 중심부 국가들은 관세정책과 보호무역적 조처들을 취해왔으며, 이는 G20이 '다시 다자적 자유무역체제를 수호하고 국제 정치경제체제를 지켜내겠다'던 선언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2012년 지연됐던 공황, 그리고 더이상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자유주의적 기획'의 붕괴, 또한 약화된 패권의 시기 패권국의 일방주의적 행태, 이 세 가지 요소는 우리가 마주보는 모든 것을 위기로 가져갈 것이다.
이미 생활의 물적토대는 붕괴되어가는 가운데, 일본과 같이 극한의 붕괴와 좌절을 경험하는 곳에서는 분노의 집합적 표출, 그리고 점진적인 적의 상정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민족'이라는 허구와 '찬란했던 과거' 그리고 '언제든 폭발 할 수 있는 주변국과의 잠재적 갈등' 등은 이제 파시즘의 등장에 초읽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 집합적 분노를 통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세력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파시즘적 상황에 대한 반동(reaction), 그리고 마주하게 될 모든 것의 붕괴. 이제 내년에는 이곳 한국에서 또한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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